구성동九城洞 – 정지용
골짝에는 흔히
유성(流星)이 묻힌다.
황혼(黃昏)에
누뤼가 소란히 싸히기도 하고
꽃도
귀향 사는 곳,
절터 ㅅ드랬는데
바람도 모히지 않고
산(山) 그림자 설핏하면
사슴이 일어나 등을 넘어간다.
九城洞 – ‘카이스트동’
예상컨대, 제목을 보고 ‘그래, 이 시야!’ 하고 선택한 학생이 필자 말고 더 있을 것이다. 우리가 밟고 숨쉬는 구성동은 대전 사람들도 잘 모르는, 일명 ‘카이스트동’이다. 한때 학교 밖의 대전 사람들과 많이 교류했었는데, 구성동을 말해도 잘 몰라 그냥 “어은동 살아요”라고 대답했던 적이 많았다. 택배 위에 쓰여질 때에만 비로소 존재하는 구성동은 그래서 참으로 은밀하다. 그리고 우리들만 알기에 애착이 간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이 시의 제목에서 말하는 구성동은 우리가 사는 이 곳을 지칭하는 것일까?
전국에 구성동은 총 3곳이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도 있고,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에도 있다. 그러나 漢字로는 제각기 다르다. 용인은 駒城洞, 천안은 九星洞이다. 놀랍게도 우리 ‘카이스트동’은 九城洞으로 시의 제목과 일치한다. 오호! 또한 정지용은 대전에서 바로 지척인 충북 옥천(沃川) 출신으로, 다른 구성동보다 우리 ‘카이스트동’이 가장 가깝다. 오호라! 그럼 정말 정지용은 지금 필자가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이 곳의 72년 전을 노래했단 말인가!
혹자는 시의 九城洞이 카이스트동을 가리키는지 아닌지가 무에 중요하냐 묻는다. 그의 말처럼, 분명 여기서 구성동은 단지 유성이 묻히고, 꽃도 귀향 사는 아득한 골짜기의 대명사일 뿐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중요하진 않지만, 허나 구성동 주민으로서의 나에겐 ‘중요하고 싶다.’ Poetry와 poetry ‘for me’는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시인이 연애시를 쓰면 그의 부인은 ‘날 생각하며 쓴 거지?’하고 물을 것이며, 평소엔 흘려 듣던 사랑노래도 나의 눈을 바라보며 불러주면 나만을 위한 멜로디가 되는 법이다. 설사 시인의 의도가 나의 바램과 일치하든 말든, 착각은 독자의 고귀한 자유이다.
그런데 시를 보면 의심이 들기도 한다. 선명한 이미지가 제시되고 있는 구성동 골짜기는, 별똥이 묻히고 놀던 사슴도 태연히 제집 찾아 돌아가는, 고요하고 신비스러운 곳이다. 이 곳이 원래 그런 곳이었던가? 학교를 지을 때 골짜기를 밀어버린 것일까?
어떤 설명에는 이 구성동 골짜기가 시인의 탈속, 무욕한 정신세계와 은일한 내면세계를 표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는데, 개뿔! 이것은 분명 자연이다. 네루다의 말처럼, 이런 골짜기에 오지 못하면 느낄 수 없는 은밀한 자연세계일 뿐이다.
2010.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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