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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산책] 약속 없는 세대 – 장정일

 

 

약속 없는 세대 장정일

 

우리들은 약속 없이 만나지 않는다. 우리들은 언제나 약속을 하고서야 만난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이미 약속 없이 만날 수 있는 영감이 사라진 지 오래니까, 하므로 우리에게 약속 없이 만나는 갑작스런 기쁨이 선사되는 일이라곤 없다.

그렇다고 해서 대체 우리가 어떤 약속을 하기나 했다는 걸까. 우리들은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났고, 우연히 극장에서 만났는데, 그리고 디스코 텍과 맥주 홀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 한잔 더 하기 위해 찾아들어간 포장집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그래, 이런 일들이 정말 어떤 약속하에 이루어진 것일까, 정말 어떤 약속하에? – 믿기는 어렵다.

우리들이 만나기 위해 더는 약속이 필요치 않다. 우리들은 약속 없이도 만날 수 있는 예민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티 브이를 켜면 만나자는 얼굴같이, 너와 내가 만나는 것은 타성이다. 우리들은 그 습관 위에서 만난다.

진정 사랑할 만한 그녀를 공들여 찾아내고, 전화번호를 훔치고, 그녀가 있을 만한 시간을 점쳐 몇 번이나 망설인 끝에 전화를 하고, 실랑이 끝에 만날 약속을 하고, 어렵게 장소를 정한 그날부터 만날 날을 손꼽으며 하루 또 하루를 보내고, 가슴 아프게 기다리고, 수첩을 확인하고, 달력을 보고, 또 보고, 그날이 되어 아껴둔 셔츠를 입고, 정성들여 구두를 닦고,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두 사람 몫의 커피값을 비는 일은 이제 할 필요가 없다.

깨끗이 씻은 두 손으로 고급한 요리를 차례대로 먹듯, 그런 약속된 형식을 누리는 즐거움은 사라졌다. 우리들은 버려진 고아 같이 약속 없는 거리에서 만난다. 우리들은 두 손을 호주머니 깊이 찌르고 거리를 걷다가, 첫눈에 서로 반한다.

우리들은 첫눈에 반하기를, 너무 잘하는 세대. 남자들은 길거리에서 아무 여자나 잡아 강간을 하고 여자들은 잘난 사내를 애태우며, 그 완강한 근육 속에 천천히 잡혀들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혼음으로 젊음을 달떠보낸다.

우리들은 약속 없는 세대. 노상에서 태어나 노상에서 자라고 결국 노상에서 죽는다. 하므로 우리들은 진실이나 사랑을 안주시킬 집을 짓지 않는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발끝에 끝없이 길을 만들고, 우리가 만든 그 끝없는 길을 간다.

우리들은 약속 없는 세대다. 하므로, 만났다 헤어질 때 이별의 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헤어질 때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지 않는다. <거리를 쏘대다가 다시 보게 될 텐데, 웬 약속이 필요하담!> – 그러니까 우리는, 100퍼센트, 우연에, 바쳐진, 세대다.



약속 지키는 세대


지난 과제들을 하며 내가 했던 작업들은, 내 마음에 쏙 드는 좋은 시들을 선정하고, 내가 어떻게 느끼고 분석했는지를 나름의 문체로 아름답게 표현해 보는 것이었다. 눈을 감고 시의 구절들을 음미하며, 감상에 취한 채로 손가락을 바삐 움직였다. 지금 이번 주 과제를 하면서도 나는 흥분해있지만, 하지만 그 성질이 다르다. 억울하다. 1000원짜리 X코카스를 들이킨 듯 피가 솟구친다. 감상평을 잘 써야겠다는 생각은 시작부터 접었다. 그냥 외치고 싶다. 장정일 당신이 틀렸다고 말이다.

우리는 약속을 할 때 새끼손가락을 건다. 왜 그런고 하니, 거기에 심장과 가장 가까운 혈맥이 흐른단다. 손가락 걸고 약속을 한다는 건 단순한 제스처를 넘어, 혈맥을 타고 두 심장이 연결됨을 뜻한다. 이로서 둘은 하나가 되고, 약속은 혈서가 된다. 시인에게도 나에게도 우리 모두에게도, 약속은 그만큼 소중하다.

허나 우리는 약속 없는 세대로 낙인 찍혔다. 그것은 소중함이 없는 세대이다. 시인의 팬 끝에서, 우리는 단지 첫눈에 반하기를 너무 잘 하는 세대, 노상에서 태어나 노상에서 죽는 세대, 진실이나 사랑을 안주시킬 집은 짓지 않는 채, 끝없이 길 만들고 가는 세대가 되어버렸다.

이쯤에서 넌지시 건네본다. 아저씨, 알맹이를 보려거든 껍데기는 맛보지 말고 까버려야죠!

닭의 무리 속에 있어도 학은 학이고, 닭들이 많을수록 학의 자태는 고귀해진다. 무릇 다른 이치들도 마찬가지여서, 난무하는 껍데기들 속에서 진심은 더욱 빛나는 법이다. 정보의 이동속도가 어느 시대보다 빨라지고, 매체는 좀더 자극적인 껍데기와 가십거리들을 퍼 날라 우리의 눈과 귀를 더럽힌다. 허나 최근 칠레 광부들의 생존과정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아름다움과 고귀함이란 시대를 막론하고 그 형태와는 상관없이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만약 그대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우선 냇가로 가 눈부터 싹싹 씻고 볼 일이다.

새벽녘 처마끝에서 빗물을 받아 눈을 씻고 나면, 비로소 보인다. 우리들의 사랑은 여전히 아름답다. 진정 사랑할 만한 그녀를 공들여 찾아내고, 전화번호를 훔치고, 그녀가 있을 만한 시간을 점쳐 몇 번이나 망설인 끝에 전화를 하고, 실랑이 끝에 만날 약속을 하고, 어렵게 장소를 정한 그날부터 만날 날을 손꼽으며 하루 또 하루를 보내고, 가슴 아프게 기다리고, 수첩을 확인하고, 달력을 보고, 또 보고, 그날이 되어 아껴둔 셔츠를 입고, 정성들여 구두를 닦는우리에게 여전히 소중하다. 기숙사에 사는 내가 이제 할 필요가 없는 것은 단지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커피값을 비는 일뿐이다.

 

잠을 푹 자고 나니 흥분이 가라앉았다. 차분해진 상태에서 흥분된 어조를 계속해서 이으려니 쓸 말이 없다. 그래서 여담을 좀 하자면, 오늘(10 14, 숙제를 내는 이 날까지 열심히 숙제를 하고 있다) 한 신문에 모태솔로에 관한 기사가 올라왔다. 읽어보면서 다음과 같이 정리되었다. 그들은 처음엔 그것의 소중함을 몰랐다가, 시간이 지나며 차츰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미 그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다가가기 신중해지고 망설여진다. 그것은, 사랑이고 또한 약속이다.

우리는 약속 없는 세대가 아니다. 메스미디어들이 앞다퉈 껍데기들을 눈앞에 퍼다 나르지만, 진정한 소중함은 바로 곁에서 숨쉬고 있다. 시대가 흘러도 여전히 우리는 그 소중함을 느끼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아파한다. 80년대 인 내가 80년대 김광석의 노래를 좋아하듯, 사랑노래는 언제 들어도 아름답고 슬프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나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성 들여 구두를 닦는다.

 

2010. 10.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