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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산책] 지는 잎 보면서 – 박재삼

지는 잎 보면서 박재삼

 

초봄에 눈을 떴다가

한여름 뙤약볕에 숨이 차도록

빛나는 기쁨으로만 헐떡이던 것이

어느새 황금빛 눈물이 되어

발을 적시누나.

 

나뭇잎은 흙으로 돌아갈 때에야

더욱 경건하고 부끄러워하고,

사람들은 적막한 바람속에 서서야

비로소 아름답고 슬픈 것인가.

 

천지가 막막하고

미처 부를 사람이 없음이여!

 

이제 저 나뭇잎을

우리는 손짓하며 바라볼 수가 없다.

그저 숙이는 목고갯짓으로

목숨은 한풀 꺾여야 한다.

! 묵은 노래가 살아나야 한다.



지는 대학생활 보면서

아침에 일어날 때면 어김없이 창틀 사이로 한기가 밀려온다. 날이 제법 추워졌다. 아니, 엄청 추워졌다. 초겨울이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릴 만한 늦가을이다. 오래 입으려고 샀던 야상은 금방 옷장에 넣을 수 밖에 없었다. 대신 집에서 보내온 겨울용 점퍼들을 꺼내 입는다.

보신각 종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한데, 올해도 벌써 끝자락에 와있다. 시의 제목처럼 잎들은 지고 있다. 온 강산에 비단을 걸쳐놓은 듯 아름답던 것들이 이제는 황금빛 눈물이 되어 발을 적신다. 연인도 사계절을 함께 해야 비로소 알만 하고 관계가 무르익는 법인데, 2010년은 이제 좀 친해질 만하니 다시 떠나갈 채비를 한다. 슬프다.

겨울의 밤은 화려하다. 노래는 걷는 발길마다 울려 퍼지고, 곳곳에 설치된 루미나리에로 도시 전체는 하나의 크리스마스 트리가 된다. 커플들은 서로 발그레한 얼굴 보며 웃음짓고, 종소리의 영롱함으로 모금함엔 사랑이 모인다. 그리고 눈이 내린다. 아름답다.

 

그래서 우리는 끝자락에 와서야 비로소 아름답고 슬프다.

 

그래도 앞날이 창창한 우리의 슬픔은 작은 편이다. 한 시기가 끝난다는 것은 다음 시기가 온다는 의미이고, 남은 시기는 지나온 시기에 비해 길기 때문이다. 우린 이제 시작이다. 허나 추측하건대,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 점점 끝자락에 가까워지다 보면 그 슬픔은 커질 것이다. 아직 그때까지 살아보지 못해 완전히 알지는 못하지만, 이런 추측을 해보는 건 대학생활의 끝자락에 와 있는 필자에게도 아류 같은 모종의 슬픔이 존재하기 때문이리라.

인생 전체로 보면 필자는 아직 새싹이다. 교수님 말대로, 아직은 세상에 때묻지 않았다 자부한다. 그러나 한달 뒤면 대학생으로서 숨을 거둔다. 이제 나의 학점과 대학생활의 기억들은 절대 수정할 수 없는 유물이 되어버린다. 나는 그들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저 숙이는 목고갯짓으로, 목숨이 한풀 꺾이는 그들에게 묵념한다.

초미니 예비사회였던 대학생활을 뒤로 하고, 이젠 정말 사회로 갈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에도 나뭇잎이 떨어질 시기가 온다. 그때는 호상이고 싶다.

쐬주가 땡긴다.

2010. 11. 18 / 카이스트에서.. (http://김철성.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