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카테고리/[詩산책]

[詩산책] 詩가 그리운 밤 - 김철성

- 영화 일 포스티노(Il Postino, The Postman) 감상 -

 

새벽 4

가 그리운 밤

 

지금쯤 잠꼬대에나 쓰일 나의 혓바닥으로

오리온 자리에 침을 바르고 싶다면

일 포스티노, 오 나의 네루다

그대의 책임입니다

 

아들, 나들이 가자

아빠 옆자리면 마냥 좋던 시절

구불구불 해안길 따라 출렁거리다 보면

도착하는 동양의 나폴리, 장호마을

마을 어귀 1/4지하 구멍가게에서

나의 아버지 마리오는

막걸리를 산다

서낭나무 아래서 세월을 낚는

신선들의 마음을 산다

사발째 휘휘 저어 돌리다 보면

카아, 소리내며 절로 터지던 구전설화

녹음기는 부지런히 그들의 파도소리를 담는다

 

새벽 5

그곳이 그리운 밤

 

왠지 모르게 문득

어릴 적 할머니가 쪽쪽 빨아준

그때 그 깍두기 맛

 

물수제비 던지면 기똥차게 날아가던

오십 번 굽어흘러 오십천은

내 고향 삼척의 자식

절벽 위 비경 죽서루를 휘감고

강바람이 머릿결을 또 휘감으니

그럴 땐 어이쿠, 이쁜 내 새끼

태풍에 물 넘쳐 온 동네 겁탈하고

소든 돼지든 다 쓸어삼킬 땐

저 죽일 후레자식

그리 미워 욕하다가도

동해바다에 말없이 부서지면

이미 깊어진 미운 정 고운 정으로

찬란한 뼛가루 가슴 위에 흩뿌린다

 

나의 아버지 네루다는

못난 자식 에 묻는다

 

새벽 6

그녀가 그리운 밤

 

누구들은 강릉역에서 처음 만나

태종대 위에서 를 읊었다

그리고 아들 마리오는

바위를 깨트려 솟는 샘물에 누워

축복을 마신다

입술을 적신다

 

우리의 시작은 긴 하품의 종말

흐르는 따스함이 추위를 밀치고

세상은 빛바랜 사진처럼 아른거린다

 

서서히 걷히는 어둠 뒤로 하고

이제는 가득할 뿐인 희망 물고

새들은 바램 쫓아 그곳으로 간다

창가에 살포시 놓고 간다

 

오전 7

일출처럼 깨닫는 아침

 

네루다는 출근 준비를 하고

베아트리체는 이불 속에 수줍어있다

마리오는 창작을 마치고 기지개를 쭉 편다

칼라 디 소토의 태양은 반갑도록 눈부시다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