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일 포스티노(Il Postino, The Postman)』 감상시 -
새벽 4시
詩가 그리운 밤
지금쯤 잠꼬대에나 쓰일 나의 혓바닥으로
오리온 자리에 침을 바르고 싶다면
일 포스티노, 오 나의 네루다
그대의 책임입니다
“아들, 나들이 가자”
아빠 옆자리면 마냥 좋던 시절
구불구불 해안길 따라 출렁거리다 보면
도착하는 동양의 나폴리, 장호마을
마을 어귀 1/4지하 구멍가게에서
나의 아버지 마리오는
막걸리를 산다
서낭나무 아래서 세월을 낚는
신선들의 마음을 산다
사발째 휘휘 저어 돌리다 보면
카아, 소리내며 절로 터지던 구전설화
녹음기는 부지런히 그들의 파도소리를 담는다
새벽 5시
그곳이 그리운 밤
왠지 모르게 문득
어릴 적 할머니가 쪽쪽 빨아준
그때 그 깍두기 맛
물수제비 던지면 기똥차게 날아가던
오십 번 굽어흘러 오십천은
내 고향 삼척의 자식
절벽 위 비경 죽서루를 휘감고
강바람이 머릿결을 또 휘감으니
그럴 땐 어이쿠, 이쁜 내 새끼
태풍에 물 넘쳐 온 동네 겁탈하고
소든 돼지든 다 쓸어삼킬 땐
저 죽일 후레자식
그리 미워 욕하다가도
동해바다에 말없이 부서지면
이미 깊어진 미운 정 고운 정으로
찬란한 뼛가루 가슴 위에 흩뿌린다
나의 아버지 네루다는
못난 자식 詩에 묻는다
새벽 6시
그녀가 그리운 밤
누구들은 강릉역에서 처음 만나
태종대 위에서 詩를 읊었다
그리고 아들 마리오는
바위를 깨트려 솟는 샘물에 누워
축복을 마신다
입술을 적신다
우리의 시작은 긴 하품의 종말
흐르는 따스함이 추위를 밀치고
세상은 빛바랜 사진처럼 아른거린다
서서히 걷히는 어둠 뒤로 하고
이제는 가득할 뿐인 희망 물고
새들은 바램 쫓아 그곳으로 간다
창가에 살포시 놓고 간다
오전 7시
일출처럼 깨닫는 아침
네루다는 출근 준비를 하고
베아트리체는 이불 속에 수줍어있다
마리오는 창작을 마치고 기지개를 쭉 편다
칼라 디 소토의 태양은 반갑도록 눈부시다
詩다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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